Etihad Crew ;)/비행이야기

외국항공사의 기내에서 난동부리는 손님 대처법

EY.Gia 2015. 1. 30. 18:03


비행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 방콕 비행.

그 비행의 유일한 중국어 스피커였던 나는 갑자기 부사무장의 부름을 받았다.
상황은 이러했다.
이 중국인 가족은 중국에서 여행사를 통해 아부다비-상해 비행을 예약했는데, 

상해행 비행이 만석이라 그라운드에서 아부다비-방콕-상해 비행기로 변경해주었다.
영어가 잘 안되서 그냥 얼결에 일정 변경을 동의한건지
아니면 변경하면서 받을 수 있는 할인 바우처들과 혜택에 흔쾌히 승낙한 건지는 모르지만
어쨋든 막상 비행기를 타고보니 (체크인을 늦게 하는 바람에) 가족 4명이 다 떨어져 앉게 되었다.
상해로 바로 가는 비행기도 못 탔는데 심지어 자리까지 떨어트려놓았다며 컴플레인.
방콕 비행은 항상 만석이라 타이 부사무장이 승객들에게 양해를 구해 겨우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그런데 이 부사무장이 실수로 다른 승객의 자리를 빈자리로 착각하고 그냥 내주는 바람에
원래 자리 주인인 아라빅 승객이 엄청 화가 났다..
비지니스에서 아라빅스피커가 내려와 이 승객을 달래고,
네명이 겨우 한자리에 앉았다가 다시 일어난 이 중국 가족은 내가 달래고,
이미 보딩은 끝났으나 승객들이 서있으니 비행기는 출발도 못하고 계속 딜레이-
겨우겨우 다시 자리를 만들어 다들 착석하고 이제 다 해결되나 싶었는데,
사무장, 부사무장이 나에게 와서 그 중국 승객에게 버벌워닝verbal warning을 주란다.

우리 회사에는 운항에 방해가 될 정도로 난동부리는 승객에게는 경고 프로시져가 있는데,
먼저 verbal warning, 말로 경고를 주고, 그래도 안통하면 written warning, 즉 글로 써서 한번 더 경고한다.
그 다음은 기장이 주는 리튼워닝, 여기까지 안 통하면 restraint kit를 사용해 좌석에 묶어둔다.
물론 도착지에서 경찰이 기다리고 있는 건 당연지사.

솔직히 나는 이 중국 승객의 행동이 이해가 가서 꼭 버벌워닝까지 줘야 되냐고 물었다.
서울 가려는데 방콕 들렸다 가라고 해서 거기까진 오케이 했는데 

비행기 탔더니 남편이랑 아들들 다 따로 앉아서 8시간 또 가야된다그러고
자리 바꿔줘서 앉았더니 다시 바꾸라는데 어떻게 화가 안 나겠는가.

하지만 사무장은 기내의 안전을 책임져야하는 승무원의 입장에서,
안전을 위해 착석하라는 승무원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고 비행기의 출발도 지연시켰기 때문에 워닝을 줘야한다고 말했다.
듣고 보니 이해가 갔다.

비행기는 안전하지만 위험한 교통 수단이다.
언제 어떤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철저히 교육 받은 승무원들이 함께 탑승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세이프티는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교육받는다.
분기별 업무평가에서도 세이프티에서 낮은 점수를 받는 것은 서비스에서 낮은 점수를 받는 것과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만큼 안전은 우리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겨진다.

이 승객은 비행기의 안전에 저하되는 행동을 했기 때문에 결국 경고를 받았다.

여기서 나는 국내 항공사들을 떠올려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같은 상황에서 과연, 국적기 항공사에선 경고를 주었을까?





비정상회담을 보는데 직업별 분노지수 1위가 항공기 승무원이란다.

'손님은 왕'이라는 이유로 과도한 서비스를 강요하는 승객과 그런 승객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승무원들을 압박하는 회사.
그 와중에 선후배간의 시니어리티까지...
이런 데에서 비롯된 국내항공사의 각종 사건사고를 들을 때마다
나는 외국항공사의 승무원이라는게 참 다행이라 생각한다.


근 2주의 긴긴 병가를 끝내고 오랜만에 하는 비행,
이런 저런 의미에서 오늘도 즐거운 마음으로 비행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