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ihad Crew ;)/비행이야기

비행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다 잊게 해준 속 깊은 그 한마디.

EY.Gia 2014. 12. 17. 07:05

 

 

다들 힘들다 힘들다 말하는 런던 비행.

브리핑에서 보니 이코노미를 책임지는 태국인 부사무장의 첫인상도 그리 좋지 않았고

이코노미 크루 중에 인도애들 두명. 한명은 첫 오퍼레이팅, 다른 한명은 세번째 오퍼레이팅..

그렇게 걱정하며 런던 비행이 시작되었다.

 

모 아니면 도인 타이 크루들, 부사무장은 오히려 릴렉스 릴렉스 하며 부드럽게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고,

왠만하면 4-5명이 일하는 이코노미에 나까지 6명이었고

심지어 난 추가 크루로 투입되어 담당구역도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일할 수 있었다.

언제나처럼 빈자리 하나 없이 풀로 찬 이코노미였지만

크루가 많으니 서비스도 빨리빨리 진행되고 압박 주는 사람이 없으니 편하게 일했고

밤비행이라 승객들도 다 자는 바람에 오히려 시간이 남았다.

 

내 이름 발음하기 힘드니까 나 지아라고 불러줘 라고 말해도 기억 못하고 그냥 '지-' 하는 애들 많은데,

타이 부사무장 챤은 꼬박꼬박 나를 지아라고 불러주며 자기는 한국 너무 좋아한다고 얘기한다.

런닝맨은 매주 챙겨보고 요새는 미녀의 탄생 너무 재밌다며 한예슬 너무 예쁘다고-

중국 이후로 이렇게 한국 방송 좋아하는 애는 오랜만이다.

 

문제는 아부다비로 돌아오는 비행에서였다.

바, 식사, 카페 서비스까지 다 있는 이 섹터에서 갤리 담당인 튀니지 애가 어리버리하기 시작했다.

나름 미리 준비한답시고 했는데 바를 빼먹고 준비해놔서 결국 다 헛수고 되고,

바 서비스 하고 들어왔더니 쓸데 없는 것들을 갤리에 다 올려놔서 정리할 자리도 없는데 계속 나보고 바카트 치우라고 하고..

타월도 스페셜밀도 하나도 준비 안 해놓은 상태에서 급하게 다 내보내고 클리어런스까지 나갔다.

어찌저찌 식사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앞에서 서비스하던 인도크루애가 자꾸 나를 부른다.

그래, 세번째 오퍼레이팅이니까 이해하자 하면서 갔더니 왠걸, 캐서롤이 다 차가운 거다..

일단 트레이랑 음료 서비스만 먼저 하라고 하고 밀박스 통째로 뒤로 보냈다.

그러고서 부사무장이랑 같이 서비스하고 있는데 얘가 갑자기 나보고 인도 크루애보고 트레이랑 음료 먼저 주라고 말하란다.

뒤돌아보니 아까 그자리 그대로 서있는거다...

다시 가서 얘기했더니 승객들이 빨리 밥 달라고 한단다..

이 친구 인디고인가 어디 인도 LCC 전직인데 아무래도 거기선 판매만 하다보니 이런 상황에 더 당황스러웠겠지.

어찌저찌 빨리 내 카트 끝내고 가서 첫 카트 도와주고..

그렇게 겨우 서비스를 끝냈고,

아까 비지니스에서 본 한국 승객분 잘 계신지 확인하러 잠깐 비지니스 갔다가 승객분과 한 30분 동안 수다 떨고..ㅋㅋㅋㅋㅋ

다시 이코노미 와서 밥 먹고 보니 또 다음 서비스 나갈 시간..

 

쉴 틈도 없이 랜딩까지 하고서 거울을 보니 칙칙한 내 얼굴.

챤에게 나 오늘 피부 너무 어둡지 않아? 나 사실 파데 깜빡해서 다른애꺼 빌렸어~ 했더니

챤 왈, "나 아까부터 알고 있었어, 너 얼굴이 목보다 더 어둡더라. But I don't want you to loose your confidence so I didn't tell you."

 

어쩜 이렇게까지 생각할 수 있을까?

자기가 얘기하면 부사무장이라는 지위 때문에 지적하는 것처럼 들려서 내가 그거에 신경쓸까봐 일부러 모른 척 하고 있었던 거다..

나라면 아무 생각없이 얘기했을텐데 내가 자신감 잃을까봐 말 안했다니...

진짜 속 깊은 부사무장 챤.

아까 갤리오퍼한테 받은 스트레스를 모두 잊게 해주는 저 말.

이런 부사무장과는 그 어떤 비행도 힘들지 않을 것 같다.

 

챤, 코쿤카 ;)